어렸을 때..
같은 극단에 소속된 친구가 있었다,
우리 둘은 나이가 유일하게 같았고,
아주 아주 작은,
소극장 중에 아주 미니한 소극장이라
사람들과의 관계는 끈끈할 수 밖에 없었다, 끈끈함 이상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공연을 마치고
여느때처럼 무대 바닥에 라면과 계란과 소주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알바를 가야 했던 터라,
나는 객석 아래 만들어놓은 작은 침대 공간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결에,
이 친구가 내 얘기, 내 뒷담화를..
시작하는 거다.
나는 못 들은 척 잠을 다시 청하려 했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고
내 얘기 역시 계속 이어졌다..
나는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 아이에게 대항하기 위한 온갖 태세를 갖추고 나갔던 거 같다.
나를 본 그 친구는
활짝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며
포옹했다,
나를 보고 차라리 뜨끔 했더라면..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할 텐데,
아무렇지 않은 듯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를 안는 그 아이의 모습에,
내 몸과 마음은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이 증상은 이어졌다,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웃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고
내 몸과 마음은 그냥 굳어버렸다.
돌처럼.
그리고 이것은 그 아이에게
나를 더 욕할 빌미를 만들어주었고
그 아이는 "쟤 왜저래" 하며
이제 술취해서 하는 뒷담화가 아닌
진짜 제정신의 뒷담화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그 아이와의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그리고
나는 그 극단을 나오게 된다.
이후에도 극단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표님은 나를 초대했고
그 때도 역시 같은 증상이 이어졌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 모든 상황을 맨정신으로 기억하고 있던 선배.
선배는 항상 나에게 말했다.
너 정하한테 언제 말할거야?
하지만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말하면 미안하다 하고 금방 풀어질 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마도 1초전 나를 욕하고 나를 안는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상처를 받았던 거 같다,
아마도 어린 시절 그 목사의 트라우마와 함께.
그건 단지 그 순간의 것이 아닌 상처였다.
그 선배가 나한테 물어올 때마다,
나는 그 선배가 대신 말해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넌 알잖아,
내가 왜이러는지.
다른 사람 아무도 몰라도 넌 알잖아..
그 아이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제 편으로 만들어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선배도 말하지 않았다.
그 선배는 당시 나와 가까운 관계임에도.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알았던 그 선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타인의 삶이란 영화를 보면서
아마 기호라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작가의 권위를 빌려,
영화라는 세련된 표현방식을 빌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마음을 쓰는 건
현실에서 민주 같은 성향의 사람.
기호같은 성향의 사람은
현실에서는 이렇게 말해줘도
아니 대놓고 말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걸,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 목사처럼.
여전히 나에게 성경말씀을 보내는 그 목사를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증오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증오해왔고
그 증오가 어떻게 내 인생 전부를 휘둘렀는지,
대놓고 찾아가서 말도 했다.
영화가 아니고
진짜로
20년 뒤 찾아가 얼굴을 보고
널 죽이려 했었다고 말했는데,
끝끝내 미안은 하지만 자신은 그런적이 없다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성경구절을 보내와,
죽이려는 거 가만히 참고 살고 있는데
나를 왜 자꾸 건드리냐고 소리를 질러도
카카오톡 아이디를 바꾸면
또 보내오는 사람이다.
지금 깨달은 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정말 뭔가 살인이나 법적으로 죄가 될 게 아니면
"모른다"는 거다,
들어도 "모른다"는 거다,
정말 진짜로 살인을 하지 않은 담에야,
이 모르는 사람한테 백날 말해봤자
돌아오는 건
상처의 굴레 속에 갇혀 계속 분노 속에 살아가게 되는 나 자신이고,
이것은 사실 그 "기호들"의 인생과는 슬프지만 전혀 무관하고..
가장 중요한 그 "민주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분노로 점철시키게 되는 결말을 낳는다는 것..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신경을 "못" 쓴다.
신경을 쓰는 "뇌세포" 자체가 없다..
이 세상은 다양한 성향의 인간들이 살고 있고,
그 누구도 그 누구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걸..
배우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하여.
그래서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어떠한 영화들은
징징거리는 하나의 세련된 표현양식이 아닌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