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걸..
보여주는 건,
싫어서가 아니야,
이젠 누구도 싫어하지 않아,
더이상 분노하지도 않아.
분노하는 것도 이제 지쳤어.
그냥,
내 안에 얼마나 커다란, 살인적인 분노가 있었는지
이럴 수 밖에 없는
변명이라고, 알아주었으면 해서.
나는 이 분노가
사춘기 때조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분노의 크기를 보면.. 이게 나만의 것은 아닌 거 같아.
엄마의 원망과 분노,
아빠의 분노와 불안,
할머니의 분노.
할아버지에서 아빠로 내려온 분노,
구씨 집안에 내려오는 깊은 분노가이어져 온 듯 해.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된 건데,
경계성이나 고기능성 자폐일 수 있다는 거.
이건 사람들이 보통 아는 그런 자폐가 아니고, 경계성이고 사회적인 기능이 어느 정도 가능한 자폐 성향을 말하는데,
병원에서 확실히 진단받은 건 아니지만
관련 증상들을 보고 너무 공감 되서 계속 찾아보고
자가진단 테스트도 해봤더니 그렇게 나왔어.
대학교 때 찾아간 심리상담소에서 검사할 때도 내향성이 최고점수로 빨간 선을 넘어가서
상담소에서 계속 연락이 왔었던 기억이 나.
난 뭔가 잘못된 걸까봐 가지 않았고.
그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살인적인 분노로까지 키운 것도
꼭 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 자폐 성향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이제 생각하게 돼.
어릴 때 내 행동들, 생각들,
모두 다 거의 들어맞고 설명이 되더라고..
이런 자폐 성향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이 가능하니까
가면 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가면을 쓰는 게 더이상 불가능해질 정도로 지친다는 것도..
모두 다 내 상황에 꼭 들어맞더라고..
남은 생이 얼마간 있다면,
이 가면은 집어 던지고 자폐이든 뭐든
말을 똑바로 못하던 사람을 못 만나던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다 가고 싶어,
너네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나.
여기 있으면
무의식 속에 박혀버린 그 분노와 가면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불툭불툭 튀어나와 본래의 나가 뭔지
찾기가, 보기가 너무 어려워.
특히 사람을 만날 때,
특히 가족.
더이상 여기서 여지까지 살아온 삶에 미련이 없어,
아니, 미련이 많아서
진작에 떠났어야 할 걸, 미루고 또 미뤘던 거 같아.
여기서 어떻게든 해볼라고 40년 넘게 발버둥쳤지만,
그 분노와 가면의 무의식을 더 굳히는 결과만 낳은 거 같아,
싫어서 가는 게 아니야,
옆에 있으면 이 분노가 나를, 너를 어떻게 할지 몰라서.
생글생글 웃는 착한 얼굴 속에
이런 살인적인 분노가 숨어 있다는 걸 누가 알겠어..
하지만 그래, 그렇다.
난 이제 더이상 가면을 쓰지 않을 거야, 죽을 거 같았거든. 가면을 쓰다 숨막혀 죽거나 누굴 죽이거나
아니면
이 곳에서 떠나 그냥 바람처럼 살다 가거나,
후자가 낫겠지,
내가 죽거나 죽이지 않아도 되니.
모두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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