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책을 읽지 않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에
거의 도서관을 매일 갔고,
그렇게 책 사이에 둘러쌓여 있으니,
이런 저런 책을 들춰보지 아니할 수 없고
걔 중 어떤 책들은
내 심장을 쿵쾅 쿵쾅 뛰게 만들었고,
설레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뭘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그 큰 도서관에서 길을 잃었던 거 같다,
그 많은 책들과 두꺼운 책들에 압도 당했던 것 같다..
그래도 도서관에 자주 가려고 했는데
앉으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혼미해지고
어느새 책상 위에는 액체가 흥건했다..
아마 뚜렷한 목적이나 생각이 없이
있던 듯 하다..
입시처럼 누가 정해준 목표나 목적이 없으니,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있는 명확한 잣대도 없으니,
그 목적의식이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그것과 관련된 서적과 잡지를 언제나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뭔가 내가 있는 현실과
그 책 속 세상의
괴리가 커지면서..
괴로움도 커지고
그 괴로움을 감당하는 법을 모르고
순간 술이 주는 쾌락에 자주 걸렸다. 그 순간적인 도파민의 유혹, 그건 정말 강렬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삶의 의미와 목적이 여전히 흐릿했던 나는
법정 스님의 책을 간간히 읽었고,
책에 압도 당하지 않고자
자주 도서관에 가지는 않았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을 읽고 변했다,
책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
이런 말을 우리는 수백 번 수십 번 듣는다,
듣고도 안 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마다의 이유가.
나의 이유는 저랬고,,
자존감이 낮은 시절엔,
나 자신의 생각과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하던 시절에는,
책을 읽으면
더 나의 부족함만을 느끼고
더 나의 결핍만 크게 부각되는 것처럼 느낀다,
특히나 몸과 마음이 지친 상황에서는,
우울증과 불안감이 깊어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왜냐면 무의식 프로그램이 부정과 결핍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뭘 해도 부정적이고 결핍을 느낀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갑자기 책을 읽고 확 다른 사람이 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릴적 무의식 속에 프로그램되었던 부정과 결핍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 안의 온갖 부정적인 인식과 죄책감, 분노와 원망, 허무감, 공허함, 이것들에 감정적으로 압도당하고 휘둘리기 보다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건 열 여섯 살부터 마신 술을 끊은 뒤 거의 3년이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낸 뒤에 일어난 일이다,
그 전에는 항상 뇌가 프로그램된 무의식 쪽으로만 작용했고, 술을 끊은 뒤에는 금단의 고통 때문에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예전에는 이 사람 정말 잘났네.. 하며 나의 결핍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런 잘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나의 영혼을 들여다본다,
너의 영혼과 저 사람의 영혼은 각기 고유하게 달라,
모두 다른 눈송이처럼,
이 사람은 이렇게 했네~ 저렇게 생각하네~
너의 영혼은 이런 상황에서 어때? 어떨 거 같아? 지금 어때?
끊임없이 내 영혼에게 묻고,
내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든 게 당신의 soul에 맞춰야 한다,
모든 게 당신의 soul로부터 출발한다,